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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9일 목요일

[생삶QT] 20161230 시편 40:11-17

2016.12.30. 시편 40:11-17
 
약하게!
 
12 수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나를 덮치므로 우러러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
 
16 주를 찾는 자는 다 주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말하기를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당신을 둘러싼 모든 일들은 재앙이 아닙니다. 당신이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음이 재앙이고, 죄입니다.
 
당신의 가장 큰 불행은 무엇인가요?
학업에서의 누락.
못생긴 외모.
만족되지 않는 학벌.
만족되지 않는 돈벌이.
마음에 들지 않는 배우자.
말 듣지 않는 자녀.
타고 다니는 차.
들고 있는 핸드백.
살고 있는 집.
온전치 못한 가족의 모습.
 
사람마다 다르고, 또는 여럿 해당 할 수 도 있습니다.
 
반대로 저 모든 것들이 채워진다면, 당신은 하십니까?
 
*만족되신다면, 그것대로 저주이고;
(? 영원한 것과 유한한 것을 구분조차 못하는 상태니까)
만족이 안 됨을 느낀다면 그 자체로 고통인겁니다.
 
12절의 나의 죄악과 나를 둘러싼 재앙은
내가 깨닫지 못함이고, 나의 기준이 하나님이 여전히 온데간데없고, 세상의 무엇으로 나를 채우려하는 모습입니다.
 
애당초, 당신을 결정짓는 기준에 하나님은 없는 겁니다.
 
우리의 즐거움과 만족됨과 기쁨의 기준은
단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함께함이 기쁨이요.
함께하지 못함이 죄악이고 불행입니다.
 
우리 마음의 기준이 오직 하나님 한분이시길 바랍니다.

2016년 12월 28일 수요일

[생삶QT] 20161229 시편 40:1-10

2016.12.29. 시편 40:1-10
 
[우리말] 6 주께서는 제사와 제물을 원하지 않으셨고 번제와 속죄제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주께서 내 귀를 열어 주셨으니
7 그때야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내가 왔습니다. 나에 대해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습니다.
8 오 내 하나님이여, 내가 기쁘게 주의 뜻을 행하겠습니다. 주의 법이 내 마음속에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12QT 한 달간 시편 화자를 통한 묵상의 마지막에 다다랐다.
제사와 제물을 원하시지 않으시고, 번제와 속죄제도 요구하지 않으신다.
 
예배도 필요 없고,
헌금도 필요 없고,
회개도 필요 없다.
나는 너를 원한다.”
 
그래서 사랑이다.
 
그것을 알고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이
나를 예배하는 것이고,
나에게 헌금하는 것이고,
돌이켜 회개 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너를 원한다.
 
그렇습니다. 주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
하나님은 그렇게 나를 부르시는군요.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셨군요.
 
내 심중에 계시는 당신은 정녕 하나님이시군요.
 
어찌 당신을 고백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당신의 사랑이 이렇게 큰데...
 
너 또 같은 소리 한다.
그만 좀 해라.
이단이냐?
목사 그만까라.
내 신앙이다.
가치관을 건들지 마라.
내비둬라.
니 말이 맞더라도 내 믿음이다.
나는 이렇게 배웠다.
내 생각에는 그렇다.
 
제발, 제발 좀 예수 이야기 그만해라.
 
하하하하하 : )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원하시지
당신이 만들어낸 가치관과 당신의 기준과 당신이 세워 놓은 금송아지(여전히 하나님이라 부르는) 따위는 원하지 않습니다.
 
헌금은 바로 당신입니다.
예배는 당신과 하나님이 함께하심입니다.
회개는 이것을 알고, 하나님께 돌아감입니다.
 
여호와께 돌아가자.
집으로 가자.
본향으로 가자.
(셀라)
 
아멘.

2016년 12월 27일 화요일

[생삶QT] 20161228 시편 39:1-13

2016.12.28. 시편 39:1-13
 
< 나그네 >
 
오늘은 좀 공격적 !
 
[우리말] 5 주께서 내 삶을 한 뼘만큼 짧게 하셨고 내 일생이 주가 보시기에 아무것도 아니니 제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어도 사람이란 헛될 뿐입니다. (셀라)
6 사람이란 저마다 이리저리 다니지만 그림자에 불과하고 별것도 아닌 일에 법석을 떨며 누가 갖게 될지 모르는 재물을 차곡차곡 쌓아 둡니다.
11 주께서 죄지은 사람을 꾸짖어 고쳐 주실 때 그가 소중히 여기던 것을 좀먹듯이 사라지게 하시니 사람이란 헛것일 뿐입니다. (셀라)
 
그렇다. 우리는 누가 갖게 될지 모르는 재물을 차곡차곡 쌓아둔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 내어 사는 걸까?
 
You can’t take it with you.
 
하늘 상급 쌓기 위해 헌금을 열심히 한다.
(헌금이라는 단어 대신 봉사, 충성, 헌신, 순종 등)
 
이렇게 자기 합리화 또는 합리화 당한다.
 
이런 표현이야말로 이단적이고 개 씨발 싸이코 같다!
 
무슨 세상의 것이랑 하늘의 것이랑 바꿔 먹는 것이 보장된 것 마냥; 옛날 옛적 바꿔먹는 것 같다.
이나 잡숴라 (셀라;니미)
차라리 엿이라도 먹으면 맛있기라도 하지.
사기를 쳐도 정도 것 쳐야지.
 
뒤에 항상 따라 나오는 멘트
아멘으로 화답하시는 성도님들 있을 줄 믿습니다.”
 
귀싸다긔를 양쪽으로 샤박샤박 때리고 싶다.
 
이미 이런 목회자의 기본적 개념과 생각과 틀과 마음과 사고 안에는 이란 이 세상에서의 가치(worth;value)와 물질적 성공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시는 복이고, 그것을 하나님께 헌금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더 큰 가치(상급)을 주신다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이고 인본주의적 마음이 그 밑바닥에 깔려있다. 무슨 투자자들도 아니고 투자가치 효용대비 높은 수익률?
 
본인은 인지하는지 모르겠지만...
 
하긴 알면서도 그런 소리 쳐지끼면 진짜 사기꾼이고,
본인이 인지 못한 채로 그런 소리하면 타고난 사기꾼이네.
 
12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
 
시편의 화자의 결론의 키워드는 나그네이다.
머물다 가는 것이다.
주와 함께 있는 것에 목적이 있다.
이 세상의 어떠한 것도 우리의 목적이 될 수 없다.
이 세상에서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
여긴 잠깐이면 사라질 곳에서 우리는 떠난다.
우리의 본향으로 다시 돌아갈 곳이다.
여기서 살림 차리고 영원히 지내려고 하면 안 된다.
 
마태복음 6: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믿음.
여우 마냥 두 굴 파지 말고, 믿을 거면 하나만 믿어라.
 

2016년 12월 26일 월요일

[생삶QT] 20161227 시편 38:11-22

2016.12.27. 시편 38:11-22
 
18 내 죄악을 아뢰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
19 내 원수가 활발하며 강하고 부당하게 나를 미워하는 자가 많으며
20 또 악으로 선을 대신하는 자들이 내가 선을 따른다는 것 때문에 나를 대적하나이다
21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22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창조주 앞에서 죄를 범함에 하나님께서는 나를 징벌하시는 것일까? 어떤 잘못을 한 것일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
 
마음으로 미워하는 자는 이미 살인한자요.
마음으로 음욕을 품은 자는 이미 간음한자이며;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저 명령을 지켜낼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 한순간도 제외 없이!
 
지킬 수 도 없고, 불가능한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은 정녕 나를 괴롭히려고 하시는 건가?
 
지켜서 해낼 수 있다고 고백하는 저자들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다. 이 질문의 끝은 시편의 화자의 마지막 고백에 나와 있었고, 나의 이 질문에 대한 대답도, 하나님의 응답도 같았다.
 
22 주 나의 구원이시여
 
내 스스로는 안 됨을 알게 하시고
내가 없음을 알게 하시고
내가 율법을 지킬 수 없음을 알게 하시고
내가 나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음을 알게 하시고
철저히 내가 피조물이란 것을 깨닫게 하신다.
 
내려놓음이란 것은
내가 결단한다고 내려놓아지지도 않는다.
여전히 나를 억누르고, 벗어날 수 없는 것을 내 힘으로 내려놓겠다고 결단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 서장훈)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우리를 내려놓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것이 이 세상의 실체이고,
이 눈에 보이는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어 가려는 행위 자체가 하나님의 뜻을 반하는 것 아닌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내가 중심이 되어서는 절대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내가 죽는다. ‘죽는다라고 고백하는 신약이
바로 이 말임을!
 
이 죽음이 나에게도 너에게도
모두에게 있기를 바란다.
아멘.

2016년 12월 25일 일요일

[생삶QT] 20161226 시편 38:1-10

2016.12.26. 시편 38:1-10
 
영원한 것을 갈망하게 나를 만들어 놓고, 대답도 응답도 볼 수도 없는 곳에 던져놓으신 그분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잠깐이면 사라지고, 신기루처럼 없어지고, 영원한 것 하나 없는 이곳에 나를 머물게 만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오직 인간의 한계만을 자각하고, 끝없는 자기 합리화와 이기적인 생각으로 자기위로 하며; 고통 속에 몸부림치게 놔두신 그분은 나를 사랑하긴 한단 말인가?
 
내 속에서 나오는 것은 배설물뿐이요, 사랑도 없고 진리도 없으니 당신이 나를 이 세상에 보낸 것은 저주였군요.
 
당신이 만들어 놓으신 이 하늘과 땅과 별들은 당신만을 바라보며 빛나는데; 나는 어찌하여 당신을 인지조차 하지 못한답니까?
 
그렇게 나를 부정하고 나의 나됨이 허무하고 공허하고 이유 없고; 없음이 없음을 철저히 인정되어지게 될 때; 하나님은 그렇게 찾아오셨다.
 
같은 세상은 그렇게 존재했다.
 
내가 나됨을 주장하는 것을 버리게 하시려고, 내가 창조주 자리에서 내려와 내 마음의 중심에서 내려와; 오직 영원한 하나 진리이신 하나님을 바라보기 위해, 그렇게 이 세상은 지음 받은 것이다.
 
저주가 축복이 된 순간이었다.
 
이 세상은 더럽고 추악하고 죄만 가득한 곳이었는데, 변한 건 하나 없는데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고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이 느껴진다.
 
형용할 수 없는 그 사랑, 보잘 것 없는 인간의 생각으로는 감히 짐작조차 못하는 하나님의 사랑.
 
오직 하나님이다.
말씀이 실체가 되어 그것은 진짜가 되었다.
시편의 저자의 마음이 절실히 와 닿는다.

2016년 12월 22일 목요일

[생삶QT] 20161223 이사야 9:1-7

2016.12.23. 이사야 9:1-7
 
< No turning Back. >
: 은 개똥 결코 돌아서지 않는 내 모습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분명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수없이 들었을 진데, 는 계속하여 죄를 짓고 그 죄의 찔림에서 벗어 날 수 없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할 무렵 나에게 그 찔림이 사라진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을까?라고 자문하고, 바울이 갖고 있던 육체적인 고통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었다.
 
동의 되었다. 그래서 인간의 갖은 한계이자 동시에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는 축복이다. 아멘 되었다. 은혜 되었다. 내가 유한한 것에 감사하고 하나님을 찾게 만드는 하나님의 큰 은혜라고
 
나는 착각했다.
 
하나님을 나의 인지구조 속에 가두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기위해 이해한하려 하나님의 사랑을 내 마음대로 제단하고 갖다 붙였다. 내가 만든 죄 기준과 스스로를 정죄함으로 피조물인 내가 창조주가 되어 판단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사는 세상에서 나는 신이었다.)
 
영원히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죄의식 속에서 몸부림치는 상태로 내버려두시는 그런 허접쓰레기 사랑으로 내가 바꿔 먹어 버렸다.
 
죄에서 자유함은 죄의 찔림에서 자유함은 완전한 해방인데, 알지 못하고 실제로 그것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으니 내 마음대로 받아들인 것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우리말] 4 그들을 짓누르던 멍에와 어깨를 내리치던 회초리와 압제자의 몽둥이를, 미디안을 꺾으시던 날처럼 주께서 부숴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으시는 그 하나님 완전히 희게 하시는 그 하나님께서는 내가 마음대로 생각한 나의 기준마저도 가져가버리셔서 죄의식 자체도 완전히 태워주시는분이시다.
 
물론 그 과정은 괴롭고 괴롭다. 내가 나됨을 주장하지 않도록 나를 철저히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괴롭히시고 방관하시고 압제자의 몽둥이를 빌려 채찍질 하셨다. 모든 것이 공허하고 느껴지지 않는 하나님을 붙잡으려 하다 포기해버리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내 모습을 보았다.
 
하나님의 그렇게 우리의 자아를 찢어버리시고 들어오신다. 그 크신 사랑은 정말 큰 파도와 같아서 무시할 수 도 없으며; 도망칠 수 도 없다.
 
오늘 결론은 본문에는 잘렸지만 8절이다.
 
8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며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하셨은즉
 
주 예수그리스도 성령이 임하시니 끝이 났다.
 
내가 나됨을 주장할 수 없게 돼버렸고
내가 갖고 있던 모든 기준이 파괴되고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내가 피조물임을 실로 드디어 자각하게 되었다.
 
그랬더니 자유가 찾아왔다.
그 무거운 짐이 사라지고;
예수그리스도께 가서 평안을 얻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무거운 짐 진 자 다 내게로 와서 쉬라.”
 
, 하나님의 섭리하심은 이런 것이구나.
 
참으로 가볍고 좋다.
참 좋다.
 
이것이 복음이구나.
 
오늘도 아멘. 아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