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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9일 일요일

[생삶QT] 20170320 누가복음 18:9-17

2017.3.20. 누가복음 18:9-17
 
   바리새인과 세리, 제자들과 어린아이 대구[parallelism, 對句]를 이루고 있다. 바리새인에 해당하는 것이 제자이고, 세리에 해당하는 것이 어린아이이다.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을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어린아이의 것이니라.
 
하물며 결단코 다른 경우는 없다는 것을 못 박는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번 QT에서 세상 속에서의 겸손(유교적 겸손)을 배운다면, 마음은 바리새인과 같되 겉으로는 나타나지 않는 기괴한 겸손만을 배울 것이다.
 
상대적 우위에 있을 때, 가능한 것이 세상 속에서의 겸손이다. 애초에 나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 앞에서 무엇을 겸손할까? 내가 김연아 선수에게 가서 트리플 악셀(Triple Axel)을 자랑할까? 못한다고 겸손할까? 겸손 이라는 것 자체가 성립될 수가 없다. 용서도 마찬가지이며, 자만심도 역시나 마찬가지이다.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구원을 받는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겸손을 배운다?
세상 속에서 인간이 살아갈 때 말하는 겸손을 이 구원에 대해서 적용한다는 것은 하나님보다 내가 우위에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어찌 구원을 구걸하는 자의 모습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오늘 말씀의 더욱더 큰 맹점은 제자들이 바리새인 역할이다. 예수님 바로 옆 가까이에서 기적과 이적을 직접 보며 함께 동고동락한 이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우상석좌상석만 탐내고, 하늘나라복음을 전하러 온 예수님 앞에서 이 땅에 불을 던지러 온 그 분 앞에서의 제자들의 모습이다.
 
눈에 보이는 예수님이 직접 가르치셔도 존못알이 바로 인간의 상태이다. 구원 없음을 천명하신다. 그저 그를 따른거나(제자) 고백하거나(무리) 행동으로 옮기거나(바리새인) 해도 구원 없음이 같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바리새인 하나님이 지켜 분부하신 모든 것들을 했다고 생각하여,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상태. (법에 갇힌 자들)
제자 예수님이 함께하시기에 제자로 부르셨기 때문에, 안전하다 생각하는 상태. (현대교회 안에서 하나님과 관계와 상관없이 안심하는 자들)
 
진짜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들은 세리와 어린아이를 살펴야한다. 그들은 왜 하나님으로부터 칭의(稱義)받을 수 있었단 말인가?
 
세리는 겸손(여기서의 겸손은 구원받았으나 하나님 앞에 죄 있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짜 죄인임을 깨닫는 상태.
어린아이 그의 마음에 오직 예수인 상태.
 
내가 진짜 죄인임을 깨닫기 위해서 주신 것이 바로 법()이다. 지키라고 준 것이 아니라, 내가 지킬 수 없음을 철저히 깨닫고 내가 피조물임을 깨닫게 준 것이 바로 율법이요, 나의 생각이요 나의 가치관이며 바로 이 세상이다.
 
3: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갈 4: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롬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오직 이 예수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이름은 없다.
섞지마라 섞지마라. 세상으로 섞지마라.
세상의 의 가치관으로 섞지마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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