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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23일 목요일

[생삶QT] 20170324 누가복음 19:11-27

2017.3.24. 누가복음 19:11-27
 
<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
 
이윤을 남긴 종과 대비되는 것이 한 므나 만을 그대로 간직한 종이다.
 
예수님의 모든 비유는 항상 2가지로 나뉘어 등장한다.
누가복음 최근 QT로 한정해도
 
병 고침을 받아 돌아온 자와 아니한 자
제자와 아이
바리새인과 이방인
열매 맺는 포도나무,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부자와 나사로
아니오
 
오늘 말씀에서 그저 간직한 종은 혼이 난다. 심지어 죽임을 당한다. 그 이유가 뭘까? 일을 존나 안해서? 한 열배 뿔려놔야하는데 못해서? 수익률이 나지 않아서? 혼이 나지 않는 종들은? 잘 뿔려놔서? 수익률이 대박이라서?
결론이 조넨열심히 해야 하는 것으로 난다면, 하나님의 기준에서 얼마나 뿔려놔야하는가?
 
21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22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그냥 모르는 것이다. 무섭고, 두렵고 도무지 주인을 알지를 못하며 그가 원하는 뜻을 따르기도 싫고, 당신이 나에게 원하는 것을 도무지 나는 모르겠으니 내 마음대로 살아가렵니다. 그래서 인 것이다. 수익률이 낮아서 죄인 것이 아니다. 주인을 모르는 것이 죄인 것이다. 수익률로 따진다면 5배 뿔린자도 죽었겠지? 10배 뿔린자가 있으니
 
로마서 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로마서 2: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로마서 2: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로마서 2: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또한 내가 갖고 있는 하나님으로부터 지켜야할 것들 또는 판단 기준을 생각해보라. 그대로 나를 판단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대의 생각 그대로 당신을 심판하시는데,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24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25 그들이 이르되 주여 그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26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27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므나를 뺏기면 죽임 당한다.
므나가 늘어나면 더욱 살림 당한다.
 
네 안에 말씀이 거하면 더욱 풍성히 자라날 것이다.
네 안에 말씀이 거하지 아니하면 메마를 것이다.
네 안에 예수그리스도가 함께한다면 너는 내것이다.
네 안에 예수그리스도가 없다면 너는 누구냐?
네 안에 나의 영이 있는지 확인하겠다.
네 안에 진리가 있는지 확인하겠다.
네 안에 사랑이 있는지 확인하겠다.
 
다 동의어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만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와중에 못알쳐먹는 주위 사람들을 보라. 그는 이미 열 므나 있습니다! (항상 등장한다.)
 
므나를 뺏긴 결과는 죽임이다.
 
므나 뺏기고 나서 이를 갈며 울지 마세요.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아멘.
 

2017년 3월 22일 수요일

[생삶QT] 20170323 누가복음 19:1-10

2017.3.23. 누가복음 19:1-10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삭개오가 구원받음이 6절때문인가, 8절때문인가?
 
6절도 아니요, 8절도 아니다.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죄인 삭개오에게 유하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녀를 찾아 다시 회복시킨 것이다. 무엇으로? 예수 그 본인으로.
 
오늘 말씀의 결론이 6절 또는 8절로 결론이 난다면; 전인격적 변화를 위해 우리 스스로 얼마나 힘써야하는가? 가능이나 한 것인가? 할 수나 있는가?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돌무화과나무 위에 있는 삭개오는 열매 맺지 못하는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마태복음 21: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요한복음 15: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다 태워버리신다.
스스로가 나무가 되어 열매 맺으려 하는 자 다 태워 버리신다.
우리는 나무가 아니라 가지다. 그저 예수그리스도 포도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열매 맺게도 해주신다. 그런데 자꾸 가지가 나무 흉내 내려고 한다. 열매 낼 수 없는데 열매 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요한복음 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예수님의 비유는 어찌 이리 하나 같이 마음을 울리는가.
 
너희는 그저 나에게 붙어 있기만 하라.
너희는 나에 안에 나도 너희 안에 있기만 하라.
 
요한복음 15: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여기 어디에 열매 맺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의 헛된 발버둥이 있단 말인가!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다.
 
아멘.

2017년 3월 21일 화요일

[생삶QT] 20170322 누가복음 18:31-43

2017.3.22. 누가복음 18:31-43
 
< 인간 탈곡기 >
 
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누가복음 묵상하는 동안 하나같은 현상은 바로 옆에 있어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 왜 그럴까? 오늘 답을 주신다. 감춰졌기 때문이다. 감춰져있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일련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요한계시록 5: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로마서 2: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로마서 2: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이 두루마리는 분명 안과 밖으로 쓰여 있으니 분명 이 봉인을 떼야만 안의 내용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표면적 유대인은 유대인이 아니고, 오직 이면적 유대인만이 유대인이니 마음의 할례가 진짜 할례임을 말씀하신다. (그저 곧휴까는게 아니다. 그럼 녀자는 어쩌라고?)
그러면 마음의 할례가 무엇이냐? 할례 받지 아니하고서는 결단코 이면적 유대인이 되지 못하며, 이면적 유대인인 만이 이스라엘 백성 됨을 보여준다.
 
에스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에스겔 36: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결론은 또 똑같다.
예수그리스도다.
새 영이 뭘까?
나의 영혼을 깨끗하게 탈곡시켜서 다시 넣어준다는 뜻인가?
거룩하고 온전한 것은 하나밖에 없는데
하나님이시다.
 
그냥 θ를 주신다.
그래서 성령인 것이다.
 
요한계시록 5:5 -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율법을 자기 마음에 맞게 고쳐서 이용해 먹을 것을요. 어차피 지키지 못할 것조차도 아십니다. 그래서 선택한 최후의 방법은 하나님 우리에게 들어오셔서 직접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결론은 예수그리스도이며 그 외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멘.
 

2017년 3월 20일 월요일

[생삶QT] 20170321 누가복음 18:18-30

2017.3.21. 누가복음 18:18-30
 
20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1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3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오늘 말씀을 보며 돈이 많은 사람은 천국갈 수 없다. 그러므로 갖은 재물을 팔고 거지처럼 살아야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 어차피 자기 마음에 드는 것만 쏙쏙 뽑아 먹는 인간들이기에 이런 말씀은 절대 문자 그대로 해석은 안하지, 언제는 비유 언제는 근본주의자가 되기도 하는 때에 따라 바뀌는 그 기준. (생략)
 
그렇다. 부자는 어제의 바리새인과 다를 바가 없다. 성경을 읽거나 세상에 살아가면서 배운 도덕 윤리적 즉, 우리가 생각하는 그 기준에 따라 하게 열심히 살아 내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성경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옳고 그름의 기준을 세우는 자가 곧 본인이 되는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 그 입법자가 되는 순간 하나님과 상관없이 율법을 다 지켜내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본인이 법을 제정했으니 그 법을 지키려 노력하겠지?)
 
26 듣는 자들이 이르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그러나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화답하는 청중이 정답을 준다. 아무도 지켜낼 수 없지 않습니까? 인간은 불가능하잖아요. 인간은 탐심을 내려놓을 수 없잖아요. 마음에서의 온전한 제거 따위가 불가능하잖습니까?
예수님께 질문한 저들이 하나님의 진의에 가까운 자들이다. 어제 QT에서 묵상한 것과 같이 내가 할 수 없네?’를 깨닫는 것이 율법의 진의이지, ‘내가 열심히 해보자.’가 결단코 율법의 의미가 아니다.
 
27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예수님께서 답하신다.
그래 너희들 말이 맞다.
니들이 할 수 없어.(병신들아)
율법 지키려고 이 새키들이 자꾸 흉내를 내 ?
니들 나 없으면 안 돼.
니들은 없음이야.
니들은 먼지고 티끌이야.
니들은 무 존재야.
너희들은 짐승이야.
 
하나님이 하실 수 있어.
내가 있어야해.”
 
요한복음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한복음 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눈에 보이는 공동체냐?)
 
그래서 오늘의 결론도 예수그리스도다.
내 안에 네가, 네 안에 내가.
 
아멘.
 

2017년 3월 19일 일요일

[생삶QT] 20170320 누가복음 18:9-17

2017.3.20. 누가복음 18:9-17
 
   바리새인과 세리, 제자들과 어린아이 대구[parallelism, 對句]를 이루고 있다. 바리새인에 해당하는 것이 제자이고, 세리에 해당하는 것이 어린아이이다.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을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어린아이의 것이니라.
 
하물며 결단코 다른 경우는 없다는 것을 못 박는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번 QT에서 세상 속에서의 겸손(유교적 겸손)을 배운다면, 마음은 바리새인과 같되 겉으로는 나타나지 않는 기괴한 겸손만을 배울 것이다.
 
상대적 우위에 있을 때, 가능한 것이 세상 속에서의 겸손이다. 애초에 나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 앞에서 무엇을 겸손할까? 내가 김연아 선수에게 가서 트리플 악셀(Triple Axel)을 자랑할까? 못한다고 겸손할까? 겸손 이라는 것 자체가 성립될 수가 없다. 용서도 마찬가지이며, 자만심도 역시나 마찬가지이다.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구원을 받는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겸손을 배운다?
세상 속에서 인간이 살아갈 때 말하는 겸손을 이 구원에 대해서 적용한다는 것은 하나님보다 내가 우위에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어찌 구원을 구걸하는 자의 모습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오늘 말씀의 더욱더 큰 맹점은 제자들이 바리새인 역할이다. 예수님 바로 옆 가까이에서 기적과 이적을 직접 보며 함께 동고동락한 이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우상석좌상석만 탐내고, 하늘나라복음을 전하러 온 예수님 앞에서 이 땅에 불을 던지러 온 그 분 앞에서의 제자들의 모습이다.
 
눈에 보이는 예수님이 직접 가르치셔도 존못알이 바로 인간의 상태이다. 구원 없음을 천명하신다. 그저 그를 따른거나(제자) 고백하거나(무리) 행동으로 옮기거나(바리새인) 해도 구원 없음이 같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바리새인 하나님이 지켜 분부하신 모든 것들을 했다고 생각하여,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상태. (법에 갇힌 자들)
제자 예수님이 함께하시기에 제자로 부르셨기 때문에, 안전하다 생각하는 상태. (현대교회 안에서 하나님과 관계와 상관없이 안심하는 자들)
 
진짜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들은 세리와 어린아이를 살펴야한다. 그들은 왜 하나님으로부터 칭의(稱義)받을 수 있었단 말인가?
 
세리는 겸손(여기서의 겸손은 구원받았으나 하나님 앞에 죄 있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짜 죄인임을 깨닫는 상태.
어린아이 그의 마음에 오직 예수인 상태.
 
내가 진짜 죄인임을 깨닫기 위해서 주신 것이 바로 법()이다. 지키라고 준 것이 아니라, 내가 지킬 수 없음을 철저히 깨닫고 내가 피조물임을 깨닫게 준 것이 바로 율법이요, 나의 생각이요 나의 가치관이며 바로 이 세상이다.
 
3: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갈 4: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롬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오직 이 예수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이름은 없다.
섞지마라 섞지마라. 세상으로 섞지마라.
세상의 의 가치관으로 섞지마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