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2.24. 누가복음 10:25-42
< 너 스스로 자비를 베풀 능력이 있는가? >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마태복음 21:5-7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강도에게 강탈당한 ‘이 사람’이 그저 나에겐 예수처럼 느껴졌다.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오직 사마리아인이 자비를 베푼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갈 때, “모두”가 죽여라라는 말만 외치며 조롱 했을 뿐이다.
제사장, 레위인이 특별히 성격지 좆같아서 외면했다고 생각한다면, 왜 예수가 실제로 ‘이 사람’역할이 되었을 때 모두가 외면했는가?
예수는 곧 있을 사건이며, 모두에게 해당하는 상황임을 보여주신다.
제사장과 레위인 그리고 사마리아인의 차이가 무엇일까?
숱한 무리인 이스라엘 백성과 배신한 제자들과 우리하고의 차이가 무엇인가?
사마리아인이 ‘이 사람’에게 상처를 치료하기 준 것은 기름과 포도주뿐이다.
아무리 자비를 베풀려 하려 해도, 나에게 기름과 포도주가 없다면 어떻게 자비를 베푼단 말인가?
제사장과 레위인이 갖고 있었던 것은 율법이었다.
율법으로 ‘이 사람’ 못 살린다.
(오히려 지들이 부정타서 죽을까봐 무시한다.)
오직 기름과 포도주로 ‘이 사람’ 살릴 수 있다.
우리를 살리시는 저 기름과 포도주가 과연 뭐란 말인가?
사마리아인처럼 말씀 따라 사는 것이 결단코 그저 행위를 흉내 내는 것으로 그친다면 ‘사람’ 못 살리는 쭉정이만 될 뿐이다.
이 기름과 포도주를 소유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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