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2.20. 누가복음 9:28-45
< 하나님 형상 >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예수 닮은 삶, 예수처럼 사는 삶, 작은 예수 등은 많이 들어 봤는데; 모세 같이 엘리야와 같이는 좀 어색하다.
심지어 반대 상황이면 ‘하나님이 임하시니 그들에게서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 나타나게 하시네.’라며 납득하겠는데 예수에게 오히려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니? 나니?
심지어 그 모습을 보는 베드로의 고백이 더 의아하다.
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이건 마치 모세와 엘리야를 포함한 예수의 모습을 보며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느끼는 베드로 아니던가? 근데 그 스스로도 알지 못한 상태로 외치고 있는 모습. 의아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모세와 엘리야는 하나님이란 말인가?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한 ‘의’는 하나님 형상으로 만들었으니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시는 것. 그 하나님 형상으로 회복된 모습이 바로 아담; 예수 그리스도.
인간과 예수의 공통점은 둘 다 ‘육’을 입고 있다는 것.
차이점은 인간은 죄인이고 예수는 흠 없는 양(의인)이다.
또한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지 아니하며,
예수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한다.
인간에게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어서 인간도 예수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 삼아 주시는 것.
죄인에서 의인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이 함께하심; 임마누엘로 만드시는 것이다.
45 그들이 이 말씀을 알지 못하니 이는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바 되었음이라 또 그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못알 두 번이나 나온다. 베드로도 못알. 나머지도 못알.
왜 못 알아 듣는 것일까?
선지자는 깨닫고 알아듣고 전하고, 이와 반대로 모든 백성들은 깨닫지 못하는 상황의 무수한 반복의 스토리를 성경에서 계속 전하고 있지 않은가.
제자들이 이렇게 깨닫지 못하다가 결국에는 깨닫게 되는데 오늘 QT에서도 나오지만 ‘육’으로 예수님과 함께할 때는 여전히 못 알아 듣는다. (참조. 행 2장)
주님을 모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그 주님을 알 수 있는가?
성령이다.
하나님의 영이고, 하나님은 스스로 우리에게 직접 보이시며 가르치시며 알게 하신다.
여호와의 말씀이 모세와 엘리야 임하여 이르시되
여호와의 말씀이 곧 태초부터 계신 예수그리스도시니
이들이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
하나님 형상으로 회복되어버린 자들 아니겠느뇨
계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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