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List

2017년 6월 28일 수요일

20170627 수요예배 설교 비판

<오늘은 길다. 끝까지 읽을 자만 읽읍!시다.>
 
2017.6.27 수요예배
 
창세기 33:1-11
 
야곱의 환도뼈 맞은 그 후 에서를 대하는 내용 말씀 설교
 
표현(Wording) 1 : 은혜를 받지 못한 자는 봉사나 헌신하는 자리에서 맨 뒤로간다.
은혜를 받은 자는 맨 앞으로 온다.
 
은혜를 받든지 아니 받든지 자기의 의지로 충분히 봉사나 헌신하는 자리에 맨 앞에 올 수 있으며, 은혜를 받든지 아니 받든지 맨 뒤로 가는 자도 있다.
 
은혜 입음의 결과 또는 증거로서 봉사나 헌신 따위의 눈에 보이는 일로서 그것을 측량 하려는 것은 지극히 인간의 관점이다.
 
표현(Wording) 2 : 은혜가 떨어진다. 내가 은혜가 없구나. 남편이 밉게 마누라가 밉게 보이면
 
은혜는 애초에 측량되어지는 value '' 또는 countable; numerable 이 아니다.
은혜는 uncountable; denumerable 한 것이다.
한번 오신 하나님의 은혜는 떠나갔다가 다시 왔다가 하지 않는다.
예수그리스도를 위로 올리고 내리고 할 자가 누구냐 !
 
, 은혜를 입든지 아니 입든지 남편이든 마누라든 좋게 보이기도 하고 나쁘게 보이기도 한다. 눈에 보이는 상황으로 그 은혜의 정도가 달라지지 않는다.
 
 
 
애초에 인격적 성장의 모습을 하나님을 만난자의 결과물 또는 증거물로 받아드리고 그것을 설교하니 영혼구원의 관점이라기보다는 이 세상에서의 어떻게 살아낼지 어떻게 성숙되어 질지 어떻게 하면 도덕 윤리적으로 올바른 삶을 살아 낼 수 있을까에 대해서만 설교한다.
 
심판은 하나님이 하시지만, (심판 받을 대상)이가 마음에 갖고 있는 것으로 심판 해 주신다. 과연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그 잣대대로 하나님의 심판에서 온전함을 받을 자가 누구요? 그러면서 하나님은 다 용서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자 한다. 하나님께서 용서 안 해 주셨다. 착각하지 마시라. 교회에서 울고 부르짖으면 다 용서 되었다고 생각하지 마시라, 모두 다 용서해 주셨다면 왜 십자가 위에서 좌강도와 우강도의 결과가 다른가?
 
예수그리스도만 믿으면 용서 받고 구원받는다. 이 말씀은 진리이다. 그러나 좌강도와 우강도의 결과가 달랐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적용해보면 내가 저 말씀을 내 입으로 내 뱉어 진다고해서 믿어지는 것도 믿는 것도 아니다. 내가 저 말씀을 믿고 행한다는 것은 내가 갖고 있는 것이 변화되어야한다. 세계관 관점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완전히 바뀌었음을 이야기하나, 여전히 도덕 윤리적 관점에서의 상태라면 무엇이 변화 되었다는 것이요? 이제는 율법 아래에 없어야 하거늘 여전히 율법의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어처구니없고 터무니없고 어이가 없는 모순적인 상황 아니겠는가?
 
기준이 바뀌었다는 것은 내 마음에 갖은 것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하나님도 정죄하지 아니하시는데 스스로를 정죄하는 것은 정녕 본인이 하나님이라는 교만 아니던가? 내가 갖은 것이 여전히 나를 정죄할 만한 기준이기에 여전히 나를 정죄하는 것. 그것이 바로 반증이다. ‘라는 자아가 여전히 살아있어 하나님과 연합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
 
율법아래에 매어 있지 아니한 자들만이 가능 한 감사, 평안, 봉사, 헌신, 충성은 더 이상 같은 기준으로 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로 바뀐 사람들만 가능한 것임을. 바뀌지 아니하고 여전히 는 살아있는 상태에서 저러한 것들을 내어 놓는다면 정녕 무화과나무 아래에 숨은 자들 아니겠는가? 나는 여전히 혼자 살아갈 테니 나를 내버려두시오. 내가 하나님께 이런 것들은 바칠 테니 나의 인생은 내가 주관하겠소. 이것이 거짓말 하는 자요. 내가 연합되어지지 아니하였는데 모양만 내는 표면적인 자 아니겠는가?
 
나는 아니라고 말하겠지 나의 믿음의 발로와 마음의 상태는 아니라고 말하겠지. 그러나 그 마음 깊은 곳에서는 스스로가 주인 됨을 스스로가 나타내어 보이고 있고 그것을 알게 끔 하기 위해 주신 도구가 바로 율법이라는 것이다. 스스로 정죄하는지 돌이켜 보라. 해결되지 아니한 것들이 있는지 돌이켜 보라. ‘회개하라.’라고 말한다면 나도 율법이다. 그러나 그것은 애초에 혼자의 힘으로 해결되어지지 아니한다. 그것을 보고 하나님과 함께하지 못함을 느끼라고 준 것이니까.
 
세상과 형통하여 다툼을 일으키지 않고 평안을 주는 자는 복이 있다.
진리를 갖은자
집주인
천국의 서기관
이면적 유대인
씨를 갖은자
하나님을 만난자
예수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신 자
성령이 함께하는 이
 
형통케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만드는 자들이다.
이것도 세상살이 잘되는 것으로 받아들이진 않겠지 ?
 
모두가 하나님을 만나길.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