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9.10. 청년부 예배 후 나눔中
야고보서 2:17 –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교회에서의 주된 목회 방향인 실천신학; 그리고 그 정점을 보여주는 ‘행함으로 온전케 되는 믿음’이라고 감히 설교 제목으로 사용한다.
로마서 3:20 (새번역)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인식할 뿐입니다.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히 대치되는 내용을 설교의 주제로 삼는다. 이러한 상황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또한 야고보서와 로마서의 말씀은 서로 상반되는 내용인데 무엇이 우리를 이 오류 속으로 몰아넣는 것인가?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다.”라는 대전제 아래에 구원은 이미 해결되었고, 구원의 문제는 배제한 채로 신과의 관계를 스스로(인간이) 정립한다. 구원에 대한 감사와 용서 받은 백성이 백골난망(白骨難忘)의 심정으로 앞으로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을 위해 어떻게 살아 내야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모순 상황에 빠지게 된다.
베드로전서 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갈라디아서 2:16 (새번역)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임을 알고,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고자 했던 것입니다.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는, 아무도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2:17의 행함이 없는 믿음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행함이 없는 믿음 앞부분은 ‘이와 같이’라는 어구를 의도적으로 숨겼다. 보고 싶은 것만 듣고 본인이 할 수 있는 것만 취사선택하기에 실제로 약 2:17을 말할 때 앞 어구는 사용 하지 않는다. 행함 그 자체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에 말의 진의를 설명하고 있는 그 앞부분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야고보서 2: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 말씀을 보고 여전히 ‘행함’으로만 보인다면 서술한 사람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와 같이”라는 말씀은 위의 상황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이란 것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예시이다.
헐벗고 배고픈 사람에게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라는 것은 그에게 필요한 것을 주지 않은 것이다.
이와 같이 “구원 받지 못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구원 받지 못한 사람에게 너 스스로 구원하라, 스스로 천국에 들어가라 라고 하는 것은 그에게 필요한 것을 주지 않은 것이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쌀을 주고, 추운사람에게는 겉옷을 줘야한다.
구원받지 못한 이에게는 무엇을 줘야하나?
내가 갖은 것이 없다면 내가 무엇으로 그를 구제하리요?
내가 구원 받았다면 내가 그것으로 그를 구제 하리요.
내가 구원 받지 못했다면 내가 갖고 있는 다른 것으로 그를 구제 하지요.
고린도전서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그래서 바울이 열심히 구제하고 내 몸을 불사르게 (봉사, 헌신, 충성)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다면 유익이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실제로 줘야할 것을 주지 않은 것이다.
행함과 믿음의 사이에서 오는 문제점은 이미 구원받았다는 잘못된 첫 단추와 그에 따른 진짜 행함은 없고, 가짜 행함만 남게 되는(물론 겉으로는 가짜 행함으로도 충분히 사람들로부터 칭찬 받는) 상태까지 오게 되는 것이다.
사도행전 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우리가 행하는 것은 베드로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그에게 줘서 진정한 죄에서의 자유함을 주고, 그가 죄에서 회복되어 구원받게 하는 것을 행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20: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갖고 있다면 나를 죄에서 자유케하시는 나의 믿음 말고, 예수그리스도의 믿음을 갖게 된 것이고, 그 믿음을 다른이에게 주어 그 또한 자유하게 할 수 있는 특권을 허락받게 된다. 따라서 진짜 행함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갖은 자이다.
이 갖은자가 행위로 그에 필요를 채울까?
그는 금과 은은 주지 않는다. 줄 필요도 없다.
무엇이 그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는지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우리의 필요와 궁핍을 아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우리에게 허락 하시는 것은 허다하고 사라지고 썩어질 것을 주시지 아니하신다. 영원한 생명 예수그리스도만을 우리에게 주신다. 그런데 어찌하여 헛되고 헛된 것을 구제하시겠느뇨?
딴거 구하지마라 줘도 그만 안줘도 그만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예비하신 상급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구원’밖에 없다.
내가 줄 것도 이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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