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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29일 금요일

[생삶QT] 20170929 이사야 29:9-14

<맹인의 의미>
 
2017.9.29. 이사야 29:9-14
 
9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맹인이 되고 맹인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10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
11 그러므로 모든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한 책의 말처럼 되었으니 그것을 글 아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그것이 봉해졌으니 나는 못 읽겠노라 할 것이요
12 또 그 책을 글 모르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글을 모른다 할 것이니라
13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14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에서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리라
 
교회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원한다고 말한다. 종종, 아직은 내 욕심대로 살고 싶다고 말하는 아주 솔직한 분들도 있지만(차라리 이러면 낫다.) 대부분이 그리하다. 주 뜻대로 살기 원한다고 작정하고 기도하며, 그리 살겠노라 지속적으로 다짐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매번 안 됨을 경험한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굳게 믿고 그리 살겠노라 몇 번을 대내여도 실패만을 경험한다. 왜 그럴까?
 
애초에 이러한 모순은 인간이라는 피조물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눈과 귀가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듣고 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다는 그 근자감. 그러나 우리는 눈은 있으되 보지 못하는 맹인이고, 귀는 있으되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다.
 
10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코 골고 잔다는 뜻인가?
눈은 여전히 보이는데 하나님은 눈을 감기셨음이라고 한다. 모두 장님 만들었다는 것인가?
실제적 육체적 눈이 상처를 입어 안 보인다는 뜻이 아니다.
문맹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11 그러므로 모든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한 책의 말처럼 되었으니-
글을 아는 자나 모르는 자나 다 못 알아 듣는다.
 
하나님의 뜻을 분간 하지 못하는 것을 맹인이라 하는 것이다.
 
13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다.
마태복음 23: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선생이 누구겠는가?
눈을 멀게 하시고,
다시 뜨게 하신분이 대체 누구인가?
곰곰이 생각하라.
 
누가복음 18:41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42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43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제발, 잘 생각해 보라.
내가 과연 하나님의 뜻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나 있는지? 흔히들 쉽게 언급하는 그 분별의 영그 영을 부르기나 하는지? 하나님의 허락함 없이는 우리는 봉한 계시의 말씀을 듣지도 보지도 만지지도 못하는 것이 까발려진 피조물의 모습이다.
그런데도 내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킬 수 있다고 자신하겠는가?
 
요한복음 9: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요한복음 9: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아멘.
 

2017년 9월 10일 일요일

2017.9.10. 청년부 예배 후 나눔中

2017.9.10. 청년부 예배 후 나눔
 
야고보서 2:17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교회에서의 주된 목회 방향인 실천신학; 그리고 그 정점을 보여주는 행함으로 온전케 되는 믿음이라고 감히 설교 제목으로 사용한다.
로마서 3:20 (새번역)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인식할 뿐입니다.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받지 못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히 대치되는 내용을 설교의 주제로 삼는다. 이러한 상황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또한 야고보서와 로마서의 말씀은 서로 상반되는 내용인데 무엇이 우리를 이 오류 속으로 몰아넣는 것인가?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다.”라는 대전제 아래에 구원은 이미 해결되었고, 구원의 문제는 배제한 채로 신과의 관계를 스스로(인간이) 정립한다. 구원에 대한 감사와 용서 받은 백성이 백골난망(白骨難忘)의 심정으로 앞으로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을 위해 어떻게 살아 내야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모순 상황에 빠지게 된다.
 
베드로전서 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갈라디아서 2:16 (새번역)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임을 알고,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고자 했던 것입니다.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는, 아무도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2:17의 행함이 없는 믿음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행함이 없는 믿음 앞부분은 이와 같이라는 어구를 의도적으로 숨겼다. 보고 싶은 것만 듣고 본인이 할 수 있는 것만 취사선택하기에 실제로 약 2:17을 말할 때 앞 어구는 사용 하지 않는다. 행함 그 자체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에 말의 진의를 설명하고 있는 그 앞부분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야고보서 2: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 말씀을 보고 여전히 행함으로만 보인다면 서술한 사람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와 같이라는 말씀은 위의 상황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이란 것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예시이다.
헐벗고 배고픈 사람에게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라는 것은 그에게 필요한 것을 주지 않은 것이다.
이와 같이 구원 받지 못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구원 받지 못한 사람에게 너 스스로 구원하라, 스스로 천국에 들어가라 라고 하는 것은 그에게 필요한 것을 주지 않은 것이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쌀을 주고, 추운사람에게는 겉옷을 줘야한다.
구원받지 못한 이에게는 무엇을 줘야하나?
 
내가 갖은 것이 없다면 내가 무엇으로 그를 구제하리요?
내가 구원 받았다면 내가 그것으로 그를 구제 하리요.
내가 구원 받지 못했다면 내가 갖고 있는 다른 것으로 그를 구제 하지요.
 
고린도전서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그래서 바울이 열심히 구제하고 내 몸을 불사르게 (봉사, 헌신, 충성)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다면 유익이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실제로 줘야할 것을 주지 않은 것이다.
 
행함과 믿음의 사이에서 오는 문제점은 이미 구원받았다는 잘못된 첫 단추와 그에 따른 진짜 행함은 없고, 가짜 행함만 남게 되는(물론 겉으로는 가짜 행함으로도 충분히 사람들로부터 칭찬 받는) 상태까지 오게 되는 것이다.
 
사도행전 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우리가 행하는 것은 베드로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그에게 줘서 진정한 죄에서의 자유함을 주고, 그가 죄에서 회복되어 구원받게 하는 것을 행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20: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갖고 있다면 나를 죄에서 자유케하시는 나의 믿음 말고, 예수그리스도의 믿음을 갖게 된 것이고, 그 믿음을 다른이에게 주어 그 또한 자유하게 할 수 있는 특권을 허락받게 된다. 따라서 진짜 행함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갖은 자이다.
 
이 갖은자가 행위로 그에 필요를 채울까?
그는 금과 은은 주지 않는다. 줄 필요도 없다.
무엇이 그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는지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우리의 필요와 궁핍을 아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우리에게 허락 하시는 것은 허다하고 사라지고 썩어질 것을 주시지 아니하신다. 영원한 생명 예수그리스도만을 우리에게 주신다. 그런데 어찌하여 헛되고 헛된 것을 구제하시겠느뇨?
 
딴거 구하지마라 줘도 그만 안줘도 그만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예비하신 상급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구원밖에 없다.
내가 줄 것도 이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